퀸 노래중에 제일 좋아하는 Killer Queen 을 5SOS가 커버한게 있는데 커버곡중에 제일 잘하는 것 같아서 BGM으로 들고와봤습니다 :)
21.
According to Nick Weymouth (who runs the band's official website), Queen are one of the most bootlegged bands in history.
닉 웨이마우스(밴드의 공식 웹사이트 운영자)의 말에 의하면, 퀸은 역사상 가장 가장 많은 카피 밴드가 많은 밴드이다.
22.
The band only released ‘Another One Bites The Dust’ as a single because Michael Jackson suggested they do so (after dropping by backstage at their LA show).
'Another One Bites The Dust' 가 싱글로 나오게 된 것은 마이클 잭슨이 퀸의 LA공연 백스테이지에 방문한 후에 제시한 제안에 따른 것이다. (베이스 존 디콘이 만든 노래로, 멤버들은 이 노래가 별로라고 생각해서 싱글로 낼 생각이 없었는데, 마잭이 이 노래는 꼭 싱글로 내야한다고 얘기해서 싱글로 만든 것. 처음엔 별로 기대를 안했는데 발매이후 반응이 쩔어줘서 빌보드 차트 3주연속 1위까지 했다고)
23.
Queen's collaboration with David Bowie on 'Under Pressure' wasn't planned - Bowie just happened to be by the studio while Queen were recording the song.
데이빗 보위와의 콜라보 곡인 'Under Pressure'는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퀸이 그 노래를 녹음할 때 보위가 우연히 스튜디오에 와서 같이 노래부른 것.
24.
In 2002, Queen were given the 2,207th star on the Hollywood Walk Of Fame.
2002년, 퀸은 2,207번째로 할리우드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25.
On the album sleeve for their debut release, the words 'No Synthesizers' were printed, to correct a common mistake people made.
데뷔 당시, 앨범 커버에 '신디사이저 없음'이라는 글이 쓰여있었는데, 사람들이 브라이언 메이의 기타소리를 신디사이저 소리로 오해했기 때문이다. (의역)
26.
Freddie had wanted to fix his overbite for quite some time, but feared the operation would damage his voice.
프레디는 종종 그의 튀어나온 앞니를 교정하고 싶어했지만, 그의 목소리가 바뀔 것을 두려워하여 하지 않았다.
27.
Back in 2006, Time Asia named Freddie Mercury as one of the most influential Asian heroes of the past 60 years.
2006년, Time Asia는 프레디를 지난 60년간 가장 영향력있는 아시아 히어로 중 하나로 선정했다.
28.
Brian May has a PhD in astrophysics from Imperial College London. In 2007, he was appointed Chancellor of Liverpool John Moores University.
브라이언 메이는 런던 임페리얼 대학의 천체물리학 박사 학위가 있다. 2007년, 그는 리버풀 본 무어 대학 총장으로 임명되었다.
29.
Some of the animated footage in their video for 'These Are The Days Of Our Lives' was created by animators for the Walt Disney Company.
'These Are The Days Of Our Lives' 뮤직비디오의 몇몇 애니메이션 장면들은 월트 디즈니 컴퍼니에서 제작했다.
30.
Queen released a Christmas song in 1984 called 'Thank God It's Christmas' - and it spent six weeks on the Singles Chart, peaking at No. 21.
퀸이 1984년 크리스마스에 발매한 'Thanks God It's Christmas'는 21위를 차지하면서 6주간 싱글차트에 머물렀다.
31.
Mercury had a long-term relationship with Mary Austin. However, their relationship ended when he began having an affair with a male who worked at Elektra Records. Mercury and Austin remained close friends, though. He once said of her: "All my lovers asked me why they couldn't replace Mary [Austin], but it's simply impossible. The only friend I've got is Mary and I don't want anybody else."
머큐리는 메리 오스틴과 오랜 관계를 맺어왔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그가 일렉트라 레코드에서 일하는 한 남자와 바람을 피우면서 끝나게 되었다. 머큐리와 오스틴은 친구로 남기로 했다. 한 번은 프레디가 메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모든 연인들은 그들이 왜 메리를 대신할 수 없는지에 대해 물었어. 하지만 그건 간단히 불가능한거야. 메리는 내가 가진 유일한 친구이고, 난 다른 친구는 원하지 않거든."
32.
Upon Paul McCartney’s request, Queen played the opening night of the Concert For The People Of Kampuchea in London in December 1979.
폴 매카트니의 요청에 따라, 퀸은 1979년 12월 런던에서 캄푸치아(캄보디아) 사람들을 위한 공연에서 오프닝을 연주하였다.
33.
According to Cat Fancy magazine, at one point, Freddie Mercury owned as many as ten cats. His personal assistant Peter Freestone wrote that he "put as much importance on them [his cats] as any human life."
Cat Fancy 잡지에 의하면, 프레디 머큐리는 한 때 10마리 고양이까지 키운 적이 있다고 한다. 그의 개인 비서 Peter Freestone은 "(프레디는)인간의 삶 만큼 고양이들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썼다.
34.
In fact, Freddie loved his cats so much that he would sometimes call home to talk to them while he was on tour. He also had paintings made of them.
사실, 프레디는 그의 고양이를 너무 사랑해서 투어중 때때로 집에 전화해서 고양이들과 이야기를 했다. 또한, 고양이들이 그린 그림도 가지고 있었다.
35.
'Bohemian Rhapsody'/'These Are the Days of Our Lives' was released as a single upon Mercury's death, and the initial proceeds from the single (nearly £1,000,000) were donated to the Terrence Higgins Trust (a charity relating to HIV/AIDS).
''Bohemian Rhapsody'와 'These Are the Days of Our Lives' 앨범은 머큐리 사후에 싱글로 발매되었다. 그 싱글앨범의 발매 초기 수익(거의 100만 파운드)은 테런스 히긴스 재단(HIV/AIDS 관련 자선단체)에 기부되었다.
36.
Queen drew a whopping crowd of 250,000 people to their Rock In Rio Festival in Rio De Janeiro, Brazil in January 1985.
1985년 1월,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열린 리우 페스티벌에서 퀸은 그들의 락 음악으로 25만명이라는 거대한 관중을 끌어들였다.
37.
On Queen's first album, John Deacon was credited as Deacon John. Apparently Roger and Freddie thought it sounded more interesting that way. Since Deacon was new to the band, he didn't question it - although for the band's second album, he was credited by his real name.
퀸의 첫번째 앨범에서 존 디콘의 이름은 디콘 존이라고 쓰여졌다. 로저와 프레디 생각에 그렇게 하면 더 재밌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디콘이 처음 밴드에 들어왔을 때부터, 그는 그것에 대해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번째 앨범부터는 존 디콘의 이름이 똑바로 적혀있었다. (Deacon이 '부제'라는 뜻이 있기 때문에 Deacon John이라고 쓰면 존 부제님이 됨ㅋㅋ 두 형들의 짓궂은 장난 ㅋㅋ)
38.
OK, who can name the four tracks that drummer Roger Taylor wrote? No? They were 'Radio Ga Ga', 'A Kind of Magic', 'The Invisible Man', and 'These Are the Days of Our Lives'.
드러머 로저 테일러가 쓴 4개 곡의 이름은, 'Radio Ga Ga', 'A Kind of Magic', 'The Invisible Man', 'These Are the Days of Our Lives' 이다.
39.
Freddie Mercury required his assistants to have a pen and paper with them at all times in case he was inspired and needed to jot down some ideas.
프레디 머큐리는 아이디어가 생각날 때마다 기록할 수 있도록 그의 비서에게 펜과 종이를 들고 다니라고 요청하였다.
40.
The lyrics for Queen's song ‘Life Is Real’ began while the band were flying over the Atlantic from New York.
'Life Is Real'의 가사는 뉴욕에서 대서양을 지나는 비행중에 쓰기 시작했다.
41.
The line in 'Life Is Real' ("guilt stains on my pillow") originally began as "cunt stains", and then "cum stains" - but Mercury's personal assistant Peter Freestone steered him away from those.
'Life Is Real' 가사 중, "guilt stains on my pillow(내 배개 위 죄의 자국)"은 원래 "ㅂㅈ 자국" 이었다가 "정액 자국"으로 바꼈었는데, 머큐리의 개인비서인 Peter Freestone이 바꾸라고 해서 지금의 가사가 되었다.
42.
In 1999, Roger Taylor could be seen in the background of a Royal Mail stamp featuring Freddie Mercury. This caused a stir, since the only living people meant to appear on British stamps are members of the Royal Family.
1999년 로저 테일러는 프레디 머큐리와 함께 왕실 우표의 배경에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영국 우표 안에는 왕실 가문 사람들 이외에 살아있는 사람을 우표에 넣지 않았는데, 살아있는 사람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로저가 살아있는 레전설인걸 어떡해욧!!!)
43.
Roger Taylor's middle name is Meddows. Incidentally, he admitted he "hated the title of the second album, 'Queen II', it was so unimaginative."
로저테일러의 미들네임은 'Meddows'이다. 그는 퀸의 두번째 앨범의 제목인 'Queen II'를 상상력이 부족해 보여서 싫어했다고 인정했다.
44.
In his will, Freddie Mercury is said to have left £500,000 to his chef Joe Fanelli, £500,000 to his personal assistant Peter Freestone and £100,000 to his driver Terry Giddings.
프레디 머큐리의 유언에 따르면, 주방장 Joe Fanelli 에게는 50만 파운드, 개인비서 Peter Freestone과 운전기사 Terry Giddings에게 각각 10만 파운드를 남겨주었다.
45.
'Made In Heaven' was recorded at the end of Mercury's life. Brian May said of the recording process: "I think our plan was to go in there whenever Freddie felt well enough, just to make as much use of him as much as possible, we basically lived in the studio for a while and when he would call and say 'I can come in for a few hours', our plan was to just make as much use of him as we could."
'Made In Heaven' 은 머큐리 생의 마지막에 녹음되었다. 브라이언 메이가 녹음 과정에 관해 말하길, "우리의 계획은 프레디의 상태가 좋을 때마다, 가능한 한 그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려했어요. 우리는 한동안 스튜디오에서 사는건 기본이였고, 프레디가 '몇 시간 후에 갈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연락이 오면 그 동안 할 수 있는 한 작업을 해두려 했지요"
46.
John Deacon is also a trained electronics engineer, and he sometimes built equipment for the band to use - including the 'Deacy Amp'.
존 디콘은 숙련된 전자 엔지니어이며, 때때로 'Deacy Amp'를 포함한 밴드가 사용할 장비를 만들기도 했다.
47.
Instead of using a plectrum to play his guitar, Brian May uses a sixpence coin (one of which was sold on his 'Back To The Light' tour in 1970).
브라이언 메이는 기타를 연주할 때 피크를 사용하는 대신 6페니 동전을 사용하였다. (그 중에 하나는 1970년 'Back To Ther Light' 투어에서 팔렸다)
48.
Freddie Mercury held the band's showmanship dear. He once declared: "A concert is not a live rendition of our album. It's a theatrical event."
프레디머큐리는 밴드의 쇼맨십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것에 관해 한 번은 이렇게 말한 적 있다. "공연은 우리 앨범의 라이브 버전이 아니라, 연극적인 이벤트이다."
49.
According to Mercury's friend David Wigg, the star believed his stage image prevented him from keeping relationships. "I created a monster. I’m handicapped because people think I’m like that. When I’m trying to get a relationship together I’m the nicest person you could meet, my dear. I’m a peach," he told his friend.
머큐리의 친구 David Wigg의 말에 따르면, 프레디는 자신의 무대에서의 이미지가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방해가 된다고 믿었다고 한다. 프레디는 데이빗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만들어진 괴물이야. 사람들은 (무대 위 내 모습만 보고 실제 모습도) 그럴 것이라 믿거든. 그치만 내가 누군과와 관계를 맺으려 할 때마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친절한 사람이야, 자기~. 나는 복숭아(달콤하고, 친절하고 재밌는 사람)거든."
50.
Mercury didn’t think he was a very good pianist, and feared playing 'Bohemian Rhapsody' live.
머큐리는 자기 자신을 아주 훌륭한 피아니스트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Bohemian Rhapsody' 를 라이브로 연주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네????? 작사작곡편곡 다 씹어드시는 분이 피아노를 못친다고???)
'덕질 > └ 외국연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퀸 플래티넘 콜렉션을 샀다! (Queen Platinum Collection Korea Eddition) (0) | 2019.01.12 |
---|---|
Queen - Deliah 가사 해석 : 프레디의 고양이에게 바치는 노래 (0) | 2018.12.03 |
퀸(Queen)에 대한 50가지 TMI 1-20 (0) | 2018.11.26 |
댓글